아직 세상은 아무도 이 아이를 모릅니다.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고 젖을 물리는 법을 몰라 초유도 먹이지 못했어요.
못난 엄마 때문에 조그만 화장실에서 세상을 봐야 했던 이 아이를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구석진 골목길 교회 담벼락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이던 한 소녀는 교회 내부와 연결된 베이비 박스의 문을 열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부가 아직 불그스름한 갓난아기와 연습장을 찢어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집어넣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렇게 엄마와 며칠 동안의 짧은 인연을 끝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요람인 베이비 박스에 들어간 아기는 영문도 모른 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으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베이비 박스 안에 아기가 들어오면 알림음으로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 퍼진다고 하네요.
이렇게 현재 전국에 세 곳이 있는 베이비 박스는 2009년 서울 관악구에 처음 만들어진 이래 현재까지 2천 명이 넘는 아기들이 거쳐 갔으며 그 수는 매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발전해 가고 나라의 복지는 갈수록 좋아지는데 왜 베이비 박스에 들어오는 아기의 수는 줄지를 않는 걸까요?
그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대한민국의 입양특례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2012년 입양특례법이 생긴 이후, 아기를 입양시키려면 반드시 친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려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했던 친모들이 출생신고를 하고 정상적인 루트로 아기를 입양시킬 수 있는 여력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궁지에 몰려 마지막 선택으로 베이비 박스에 오는 아기 엄마들은 제각각 세상에 쉽게 말할 수 없는 아픈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 한 칸 구할 여건도 되지 않아 어디 산에서 낳았는지 흙이 잔뜩 묻은 아기를 데려오는 사람도 있구요.
집단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지만, 생명인지라 지우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아기를 낳은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뉴스에 보도되는 근친 간의 성폭행으로 낳은 아이는 아예 출생신고조차 안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베이비 박스를 찾는 상당수의 아기 엄마들은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죠?
미성년자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절차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만약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을 때는 미혼모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막막한 사연들이 있는 아기 엄마들은 출생신고를 하자니, 호적에 미혼모라는 꼬리표가 남고 출생 신고를 안 하자니 정상적인 입양도 불가능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베이비 박스를 찾게 되는 거죠.
어떻게 들여다봐도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기가 베이비 박스로 들어온다고 한들 그 아기의 앞날은 과연 평탄할까요?
베이비 박스는 법적으로 공인된 시설이 아니며 영아 유기를 장려한다는 반대 여론까지 겹쳐져 법과 제도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베이비 박스 운영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인력은 운영하는 종교단체의 몫이며 친모가 직접 정상적인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양육권 포기 각서가 없기 때문에 입양 절차도 까다로워지고 그로 인해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니 입양을 잘 보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거의 97%가 보육원 등의 시설로 가고 단 3%만이 가정에? 입양되는 행운을 얻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3%의 확률을 과연 행운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밝고 건강하게 크는 아이도 많겠지만 대한민국에는 주택청약 등의 다자녀 혜택이나 정부에서 주는 입양 축하금 또는, 양육수당 등을 노리고 아이를 입양하는 쓰레기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이런 쓰레기 양부모를 만나 모진 학대 속에 하루하루 고통받다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정인이, 민영이등... 최근 1년 동안 벌써 수차례네요.....
이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뭘 그리 잘못했다고 세상은 아이들에게 모질고 혹독하게만 대했을까요?
베이비 박스 안부터 시작해서 가정에 입양되기까지 민영이는 짧은 기간 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결과는 아무도 찾지 않는 병원에서 홀로 사경을 헤매다가 외롭게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이 세상 어른들의 책임이고 법과 제도의 책임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입양특례법입니까?
탁상행정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아이가 죽어 나가야 이 나라 법이 개정될는지 의문이네요?
2021년 여성가족부 예산이 1조 2,325억 원이라고 합니다.
이 돈의 1/10이라도 제대로 쓰여졌다면 불쌍한 정인이가? 가엾은 민영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따뜻한 밥 한 끼, 달콤한 바나나 우유 한 모금 맘 편히 먹어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요?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입양 관련 법률 개선과 입양 후 관리 매뉴얼이 정비되어 더는, 정인이, 민영이 같은 가슴 아픈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길 빕니다.
아래 유튜브 링크로 들어가시면 본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구독, 좋아요, 알람설정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김습작의 시대 유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고인을 능멸하는 혓바닥 살인마의 추종자들 (1) | 2022.02.22 |
---|---|
공포 영화보다 더 소름 돋는 연예인들의 말-김창렬 편 (0) | 2021.08.25 |
화성 학대 사망 입양아 민영이의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 (0) | 2021.08.14 |
댓글